간만에 본 경기였습니다.
새벽 늦게 부터 아침까지 하는 경기였습니다만
마법사 히딩크 감독님의 버퍼를 먹고 연전연승한다는 러시아의 소문이
도저히 경기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더군요.
거의 올스타 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스페인 팀과
마법의 힘을 빌어 돌풍의 주인공이 된 러시아의 대결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스페인의 3:0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히딩크 감독님은 팀이 4강까지가면 엠에 다하여 매직을 쓸 수 없다 하더니
과연 그러한 듯 합니다.
러시아
오늘의 러시아는 두 팀이었습니다.
전반의 러시아는 돌풍의 주인공 다웠고
후반의 러시아는 3:0 패배를 당해 싼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콜로딘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좀 많이 아쉬웠습니다.
소문으로 듣기를 그의 중거리 슛은
타이 파이터의 레이져와 같은 곡선을 그린다고 하던데.
올 Euro2008 최대의 승리자 중 한 명인 아르샤빈은
오늘 경기 내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서도 세나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걸로 보아
아마도 세나가 아르샤빈을 들이받고 자폭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어쨌든, 그것은 러시아의 패배에 매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나가 없는 스페인과 아르샤빈이 없는 러시아의 대결은
세나가 있는 스페인과 아르샤빈이 있는 러시아의 대결에 비해서
훨씬 결과를 예상하기 쉽겠지요.
러시아의 또다른 주인공 파블류첸코는
골결정력만 빼면 정상급 선수라고들 하던데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동량은 흠잡을 데 없었고요,
공중볼에 약한 대신 몸싸움에 능한 스페인의 수비수들을 상대로
전방에서 공을 잡지 않고 빠르게 돌려주고
대신 공중 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욕심을 내는 모습은
정석적이지는 않지만 훌륭한 장신 포스트 플레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전반 중반 그에게 주어진 완벽한 찬스를 날려버린 것은
파블류첸코의 골결정력에 대한 악명을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그것이었습니다..
절묘하게 아웃사이드로 비껴차서 위험지역에서 걷어내는 그의 슈팅은
몸싸움 벌이다가 넘어진 스페인 수비수가 무안할 지경의 수비적 재능이었습니다.
스트라이커가 상대편 골문 앞에서 발휘해서는 안될 재능이지요.
지르코프는 오늘 빛을 발한 몇 안되는 러시아 선수 중 한명이었습니다.
세나와 밀월 여행을 떠난 아르샤빈이라든지
다 된 밥에 코 떨구기를 수 차 반복한 파블류첸코에 비해서
패스해야 할 때에 패스하고 돌파해야 할 때에 돌파하는 그의 모습은
후반에도 아직 러시아가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스페인 팀에게 틈틈이 되새기게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없었더라면 팀으로서는
스페인을 방심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그나셰비치와 베레주츠키의 수비 라인은 괜찮았습니다.
비록 세 골이나 내어주기는 했지만
그들은 러시아의 미들 라인만큼 존재감이 없지도 않았고
공격진만큼 허탈한 플레이를 펼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반에는 준결승에 올라온 팀다운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후반에도 열심히 뛰어서 여러 찬스를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킨페예프의 활약은 놀라웠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러시아는 세골 정도 더 내어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EPL 득점 랭킹 2위의 토레스는 그의 선방에 몇번 혀를 내두른 이후부터는
한낱 우스꽝스러운 댄서가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중 하나인 비야는
그의 선방을 뚫어보려다가 스스로 자신의 무릎을 다쳤습니다.
전반에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던 라모스도,
종횡으로 러시아를 위협하던 실바도
아킨페예프의 앞에서 한숨을 쉬고 머리를 감싸쥐어야 했습니다.
스페인
세르히오 라모스는 전반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후반에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이었지만
전반에는 중앙 수비, 우측 수비, 우측 공격까지 혼자서 담당하는
일인 삼역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측면 수비자원으로 출전해서 마르셰나나 푸욜이 감당할 수 없는
제공권에 대한 수비까지 담당하며 훌륭하게 활약했습니다.
다만 그냥 슛은 좀 그만 했으면.
비야는 솔직히 실망이었고요.
그런 식으로 나가버릴 줄은 몰랐어요.
어쨌든 그의 부상이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였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히딩크로서도 다비드 비야와 같은 자원을 포함하지 않은
스페인 팀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고요,
더구나 구이자와 같은 선수를 벤치에 남겨둔 채 원톱 포메이션으로 전환할 것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라고네스 감독도 준비시키던 파브레가스를 그런 식으로 투입하여
토레스 원톱 포메이션으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부상은 아마도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친 예상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고
그 예상할 수 없는 변수는 선제골을 유도하면서 경기를 결정지어 버렸습니다.
비야의 부상이라는 변수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 선수는 이니에스타였습니다.
그는 경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첫 골을 어시스트 했고, 둘째 골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모두 그가 아니라면 풀어낼 수 없는 플레이들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경기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기편 선수들을 살피면서 신호를 주고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파브레가스는 한풀이 했지요.
그는 남은 두 개의 골을 어시스트 했습니다.
우선 활동량이 많았고요,
그것은 미들필더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입니다.
그의 발을 떠나 공격수 앞에 착하게 멈춰서는 볼은
러시아 선수들로서는 알아도 막을 수 없는 변고였을 것입니다.
오늘 단연 최고의 활동량을 보인 선수는 실바였지요.
덕분에 골도 기록했고요.
비록 그의 활동량이 그리 경제적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겠습니다만
90분을 그렇게 뛰어다닌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라고 밖에는 이야기 할 수 없겠지요.
그는 좌, 우, 중앙까지 닥치는 대로 러시아 진영을 헤집고 다녔고
뛰어난 돌파도 여러번 보여주었습니다.
토레스는 아킨페예프에게 말렸고요.
간혹 공격수와 시청자 간에는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토레스 선수의 경우가 특히 그렇습니다.
토레스 선수는 EPL에서 득점 랭킹 2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언제나 한 골도 넣지 못했어요.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춤에 재능은 있어 보입니다.
세나는 오늘 좀처럼 보기 힘든 선수였습니다만
그것이 그의 활약을 도리어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세나를 아르샤빈을 게임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지우개로 사용했고
세나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스페인 승리의 토대는 세나가 닦았다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시야스는 좀처럼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이 날 게임에서의 유효슈팅은 단 두개였습니다.
전반에 파블류첸코가 위협적인 감아 찬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요
후반 끝무렵에 지근거리에서 헤딩을 성공시켰습니다.
카시야스는 모두 막아내었고요.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반응 속도였습니다.
단 두 번의 선방만을 보여주었지만
그 두가지는 그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들만한 것들이었습니다.
푸욜과 마르셰나의 수비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역시 그들의 제공력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 경기에서 파블류첸코와 같은 거구의 짐승같은 스트라이커에게는
여러번의 찬스를 내어줄 수 있다는 약점을 노출했고요
이제 그들이 상대해야 할 팀은 파블류첸코의 러시아가 아니라
클로제를 앞세운 독일이라는 것입니다.
감히 예상하자면 다음 경기는 스페인에게는 좀 힘들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스카이 스포츠 평점
스카이 스포츠의 평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
아킨페예프[GK]-6,
아니유코프[DF]-5, 베레주츠키[DF]-7, 이그나셰비치[DF]-6, 지르코프[DF]-6,
세막[MF]-6, 셈쇼프[MF]-5, 사엔코[MF]-5, 지리아노프[MF]-6,
아르샤빈[FW]-5, 파블류첸코[FW]-6,
SUB: 비얄레트디노프[MF]-5, 시체프[FW]-6
스페인:
카시야스[GK]-7,
푸욜[DF]-8, 카프데비아[DF]-7, 마르셰나[DF]-7, 라모스[DF]-8,
이니에스타[MF]-7, 사비[MF]-9, 세나[MF]-8, 실바[MF]-7,
비야[FW]-6, 토레스[FW]-7,
SUB: 알론소[MF}-7, 파브레가스[MF]-8, 구이사[FW]-5
하이라이트 동영상 첨부합니다.
빨간 유니폼이 러시아, 노란 유니폼이 스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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