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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책이야기2009. 2. 4. 10:33

윌킨슨의 말을 빌린다면 이 모든 것은 팽창하는 사회가 부딪쳐야 했던
늘어나는 생산과정에서의 어려움들을
때맞추어 해결하기 위한 한 시도였다(1판, p.285).



자극적이기 이를데 없는 제목의 식인과 제왕입니다.
방학도 되었고 해서 쉬는 겸 잠깐 읽어본 책이었습니다.
한달 보름 이상 냅다 놀아제끼다보니
그래도 문자 사회와 완전히 결별해 버리면
그건 그거대로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1.
제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몹시 불만스럽습니다.
"식인"은 이 책에서 부차적인 소재로 다루어질 뿐입니다.
잊혀질만하면 한번씩 언급되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생산 양식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생식/생태/환경적 압력과 그에 대한 인간 공동체의 대응
그리고 그 대응이 가져오는 사회/문화적인
여러 부차적인 효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식인"에 대한 언급도 그 범위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느 사회에서는 때려죽여도 암소는 못먹는다고 말하고
어느 사회에서는 돼지고기를 대접하려하면 나를 때려죽이려 하며
어느 사회에서는 전쟁을 밥먹듯이 하고
어느 사회에서는 포로를 잡아먹기도 하는데
이게 결국 다함께 살자고 하다보니 하는 짓이다.
...이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3.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규칙이 생산 양식과
생식/생태/환경적 압력의 관계인데요,
인구가 많아지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자연을 수탈하는 속도가
자연의 재생 속도를 넘어서면서 자원이 고갈되게 되는데,
그러면 인간은 효율이 극단적으로 하락한 기존의 생산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산 방식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 새로운 생산 방식은
직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일시적으로 인간의 영양 상태를 회복시켜 주지만
장기적으로 인간에게 더욱 가혹한 비용 대비 성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효율은 역시 자연이 고갈되어가면서 더욱 하락하고
인간은 또 새로운 생산 방식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보호하거나
번영에 해가 되는 동물들을 기르지 못하게 하거나 하려는 목적에서
가축들에 대한 터부 등의 문화도 생겨난다는 것이죠.
그러니 생산 양식이 변화하게 되면
이러한 터부도 퇴색하거나 변색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4.
극단적으로, 식인 문화를 언급하면서
이는 그 사회가 단백질을 섭취할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소를 사육하거나 집단으로 사냥을 나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문화적인 양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즈텍과 같은 문화권은 가축화할 마땅한 동물이 없었기에
이러한 문화를 통해서 자기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지요.


5.
그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현대 사회를 조명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산업 사회는 어느 시기까지는
이상의 공식이 정확히 맞아들어가는 사회였습니다.
공장의 라인은, 이제는 모두가 아는 흑역사에 의해 유지되었었습니다.
좁은 갱도와 작업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이 노동력의 원천으로 선호되었고
이들은 그렇게 일하다가 폐결핵 따위로 죽어갔지요.


6.
이러한 생산 양식에 변화를 준 세가지 요인을 저자는
1. 연료혁명 2. 피임혁명 3. 직업혁명
으로 들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예전에 없을 만큼 효율적으로 연료를 사용했고
이러한 생산 방식이 예전에 없을 만큼 대규모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없을 만큼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지만
동시에 예전에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자원을 소진하고 있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싸고 효과적인 피임 기구로
인구의 증가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이전까지의 인간 역사에서 생산 양식의 변화를 촉구하던
가장 강력한 요소였던 생식 압력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산업 사회 이후로
가정은 더이상 작업장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자손 번식을 스스로 조절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이 역시 공동체의 생식 압력을 덜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7.
그래서 이야기는 현대로 넘어옵니다.
생식 압력에서는 다소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현대의 인간에게도 환경적인 압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석유 자원의 고갈이지요.
석유가 아닌 다른 대체 자원에 기반한
새로운 생산 방식으로의 이행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인류는 기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전쟁으로 파멸해버린
마야 문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길을 갈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8.
저자는 이 책에서 매우 방대한 분야의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실제 사례들이 그의 이론을 뒷바침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은 당황하는 일면이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분명히 이는 그의 이론에서 크게 어긋난 상황이니까요.
설득력있는 3가지 예외 요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이 세가지가 어떤 규칙에 의거해서 통합된 것은 아니고
하나하나 주워섬겼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전해주는 메세지는
분명히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
새로운 사회 체제와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아직 통일되어 있지도 않고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앞으로 우리에게 그런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결정을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요.


머리를 식힐 겸 읽었던 책 치고는 참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많은 내용을 이렇게 쉽게 읽히도록 쓴다는 것은
감탄스러운 기술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P.S.
첨부한 표지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의 표지가 다릅니다.
아마도 판수가 다른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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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wa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