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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책이야기2007. 4. 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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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가 그를 만들었듯이 그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 알베르트 슈페어]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요제프 괴벨스, 세르게이 네챠예프 세명의 평전을 묶은
문제적 인간 3종 세트라는 다분히 수상한 이름을 가진 상품을
리브로에서 주문한 것은 퍽 오래 전이었죠. 12월이었으니까.
값도 꽤 비쌌어요. 거의 10만원 했던듯.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집어 든 02권, 요제프 괴벨스편을 오늘 끝마쳤습니다.

1.
평전은 다분히 상세하게 요제프 괴벨스라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표현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비교적 한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이라고는 해도,
그 시대와 지금의 사상이 워낙 다르니 아주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2.
괴벨스는 뜨거운 심장은 가졌지만 냉철한 두뇌를 갖지는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스스로 시와 소설을 수도 없이 써대기도 한 문학소년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감수성과 열정을 기반으로 괴벨스는 당에서 히틀러 다음으로 유명한 연설가가 되고,
이후 여러 차례의 승진을 거듭하다 전시에는 선전부장을 지내기도 합니다만
반대로 냉정하게 현상을 판단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일에는 언제나 서툴렀습니다.

3.
그의 행동과 감정은 전체적으로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옆에서 누군가가 지지추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만곡족으로 인해 언제나 열등 의식에 휩싸여 있었고,
이것은 직책과 관저, 사택 등등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는 일체의 것들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첨에 약하고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4.
특히 후자는 히틀러에게도 보이는 특징인데,
이 점이 히틀러와 그의 관계를 치명적인 코메디로 이끌고 갑니다.
동부 전선의 붕괴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황에 히틀러가 침울해지면
괴벨스가 총통의 기를 세우는 역할을 도맡았고
반대로 괴벨스가 침울해지면
히틀러가 그의 업적을 찬양하며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무책임한 낙관론, 무조건적인 신뢰를 즐기며 하루하루 위안을 얻는 사이에
그에게 미래를 맡겼던 그의 주변 사람들과 미래를 맡겨야 했던 수백만의 사람들은
아무런 보상도 얻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먼지로 화해야 했습니다.
"나는 히틀러가 괴벨스를 만들었듯이 괴벨스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전시 독일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의 이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괴벨스와 히틀러의 치명적인 시너지 효과가 없었다면
제 3 제국은 훨씬 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제 3 제국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5.
사실 파시즘 정부라는 것은 기형적이기 그지 없는 존재입니다.
파시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것은 "반이성주의",
"자연적인 인간 집단"에 대한 집착과 "감성"의 비정상적 강조인데요,
이는 당연히 "다른 것"에대한 배척, 탄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요,
엄밀히 말하면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조금씩은 존재했던 요소인 것이지요.
다만 그 사상이 조직화되어서 정부가 된다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들을 반이성주의로 맹목적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히틀러나 괴벨스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다른 것"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행위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준에 따라서 언제 자신이 "다른 것"으로 분류될 지 모르는 데 말이지요.

6.
제 3 제국의 선전술과 심리 전술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역으로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영미 연합군과 러시아의 생산력과 인력을
제 3 제국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는 것이겠습니다만,
일이 그렇게 된 것에는 제 3 제국이 자신의 선전술과 심리 전술로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리전술과 선전술은 하나의 촉매일 뿐
그 자체가 가시적인 승리를 이끌어 올 수는 없는 요소라는 점이 증명되었을 뿐인거죠.
뛰어난 심리 전술과 선전술은 有를 多로 만들 수는 있지만 無에서 有를 창조할 수는 없다,
제 3 제국은 수많은 목숨과 함께 거대하게 산화하면서 이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슬슬 다음 권을 집어들어야겠군요.
이젠 1권부터 차례차례 해 보렵니다.
1권은 로베스피에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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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wa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