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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4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단상
Column/시대유감2009. 1. 14. 16:28

지난 10일,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모씨에 대하여 법원이 구속 영장을 발부했습니다(1).
과연 미네르바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라든가
구속된 박씨가 실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각처에서 보다 심도 있고 자세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이 내용에 관해서라면 포털이나 다음 아고라를 방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제가 이 떡밥에서 건져올리고자 하는 내용은 약간 다르거든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좀 뜬금없지만 소리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소리바다1에 대한 법원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은 놀랍게도 2007년 1월 25일입니다(2)(3).
5년이나 걸린 셈인데요, 한편 소리바다는 2007년까지 다섯번의 버젼 교체가 이루어져
판결이 나올 때까지도 소리바다1을 사용하는 유저는 이미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요(4).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기술 변화로 인해 촉진된 사회 변화의 속도를
제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네르바 사건도 바로 이 시각에서 접근해 보려 합니다.

미네르바는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으려 했고 상당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박씨가 "진짜로" 미네르바인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진짜 미네르바란 과연 무엇일까요??
다음 아고라에서는 많은 미네르바 사칭도 있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사칭이란 진짜가 있어야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 진짜 미네르바가 한 명인지, 여럿인지,
집단인지, 무리인지, 사주인과 대필가의 관계인지,
심지어 허상인지조차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구속된 박씨의 허위사실유포 혐의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를 진짜 미네르바라고 불러야 할까요?
만약 또다른 김모씨가 레만 브라더스 파산을 예언한 사람이고
또다른 최모씨가 통화 스왑 실패를 예언한 미네르바였다면
누가 진짜 미네르바이고 누가 사칭한 미네르바일까요?
아니, 누구를 진짜라고 부르고 누구를 가짜라고 불러야 할까요?

검찰이 박씨를 미네르바라고 판단한 근거는 두가지 였습니다.
같은 ip를 사용했다는 것자신이 시인한다는 것이죠.

박모씨의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두 개의 ip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5).
하지만 ip를 바꾸거나 세탁하는 것은 매우 쉬운 테크닉에 속합니다.
이는 박씨의 경우에는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사용하여 범죄를 입증하기에는 너무나 약점이 많은 방법입니다.

박씨 자신이 시인한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현행법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라고 검찰이 제시하는 것은
유사한 문장력과 ip가 전부입니다(5).
자신을 감추려고 굳이 노력하지도 않은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도
증거를 찾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한국 사회의 후진성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적인 문제입니다.

이번에 정부에서 택한 선택은
예컨대 죽창을 들이대어 폭주족을 멈춰세운 것이며
벽돌을 던져서 비행기를 떨어뜨린 것입니다.
전근대적인 개념에 의거하여 전근대적인 규칙으로
최신의 기술을 이용하는 누군가를 잡아내려 했습니다.
그 자체로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딱히 내세울 대안이 없다는 것이
이 떡밥을 더없이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이런 마무리를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면
사실 저도 마땅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떡밥을 안물어 보겠다고 몸부림쳤는데
요즘 포스팅이 너무 없다 보니까
이제 초대장도 받아야 되는데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될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령이 사람을 선동하고, 속이고, 죽이기도 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미네르바 사건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nowadays